KOREA111   이야기,  story, 마음을 다스리는글  

 

 
 

행복이란 사소해 보이지만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고마워하고 부족한 것은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내가 가진 사소하고 작게 느껴지는 것들도 이 세상에는 그것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을 수 있다. 건강, 가족, 재화, 환경 등도 현재는 부족하지만 감사하고 나누고 베푸며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행복의 시작이고 행복의 모음이 아닐까?         J.E.K              2016.10.3

 
 

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지난날들을 후회한다면 오늘 가장 뜻깊은 일들을 시작해보고

또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하나씩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J. E. K            2016.5.9

 

 

사람의 걱정과 불행의 요인은 수만 가지도 넘고 행복의 요인도 수만 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중의 극히 일부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몇 가지 불행의 요인으로 인해 걱정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느니 현재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요인들을 찾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새로운 아침은 행복의 요인들을 찾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비결이라 생각된다.   ( J.E.K )

 
 
利人之言은 煖如綿絮하고     (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옷처럼 따스하고 )

傷人之語는 利如荊棘이라     ( 남을 다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

一言利人에 重値千金이요     ( 남을 이롭게 하는 한마디 말은 천금의 값어치가 나가고 )
一語傷人에 痛如刀割이니라  ( 남을 다치게 하는 말은 칼로 베는 것처럼 아프다 )     - 명심보감 -
 
 
사랑 받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요구하지 않는 사랑 이것이  영혼의 가장 고귀하고 바람직한 경지이다.  - 헤르만 헷세 -
 
근본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해 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불행도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스스로 큰 고민에 빠진다.           < 라 로슈코프 > 프랑스 파리 출신, 잠언과 성찰의 저자  -
 
사람이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천년 뒤를 계획한다. ( 人無百歲人이나 枉作千年計 )  당나라 시승(詩僧) 한산 (寒山)
 

삶이 힘들고 괴로우면 수시로 명상을 하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꽃과 나비가 있는 넓은 초원이나, 푸르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있는 긴 해변, 별빛이 찬란한 밤하늘이 있는 풍경, 가까운 이들과 즐겁고 유쾌한 만찬 등과 그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J. E. K )

 
살면서 집안을 청소하듯 마음을 비우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미움과 증오, 시기와 질투, 집착과 걱정 등 쓸데없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음의 쓰레기들을  하나씩 버릴 때 그 자리에 사랑과 행복, 평화와 안정, 그리고 행운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J. E. K)
 
행복이란 대개 현재와 관련이 있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 앤드류 매튜스 - 작가, 만화 예술가>
 
내일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  < 시드니스미스 >
 
복이 있다고 다 누리지 마라. 복이 다하면 그 몸이 가난해지네. 권세 있다고 함부로 부리지 말라. 권세를 다하면 원수를 만나게 되네.   ( 有福莫享盡하라. 福盡身貧窮이라.  有勢莫使盡하라. 勢盡寃相逢이니라. <격양시>
 
은혜와 의로움을 널리 베풀라. 사람이 어느 곳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나.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이 좁은 곳에 만나면 돌아서서 피하기 어렵다. (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에 不相逢이랴. 讐怨을 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어느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나는 바로 그 하루의 신선이다.  (조선시대 문인 이덕유)  一日淸閑이면 一日仙이니라)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편안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익지서)  心安이면 茅屋穩(모옥온)이요, 性定이면 菜羹香(채갱향)이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선순환의 힘이 됩니다. (130711 JE)

화를 참지 못하면 오늘 하루가 힘들 수 있습니다. 인내를 하지 않으면 1년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평생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나 또한 같은 사정이 되면 그 보다 더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는 아직 소중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소중한 인연과 소중한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도움이 되고 힘이 됩니다.
 

시간과 행복  (130603 JE)

지금 시간 시간이 모여 오늘이 되고 오늘이 모여 1년이 되고 1년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를 하게 되고 지금의 시간 시간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보내면 우리의 인생은 축복받은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좋은 일들도 영원하지는 않고 영원할 것 같은 힘들고 나쁜 일들도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억만금 부자도, 힘있는 권력자도 죽음을 피하진 못하였고 행복했는지는 별게입니다. 따라서 평범하지만 지금시간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위하며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남녀간의 소통의 차이 (140117 JE)

데보라 테넌 미 조지아타운대학 교수는 남성과 여성의 대화방식의 차이를 남성은 보고적 말하기 (Report Talk)을 선호하고 여성은 관계적 말하기 (Rapport Talk)를 선호한다고 하였다. 남자는 이야기의 전후 사정과 사실을 더 궁금해하고 여성은 이야기 속에 교감, 상호작용, 관계확인 등 정서적 공감을 원한다고 한다. 남성은 대화 중 끼어들기와 겹쳐 말하기는 논쟁을 부르기 쉽지만, 여성의 경우는 끼어들기 등에 관대하다고 한다. 또 여성들은 연예인들의 이야기 등에서 어느 정도 영역이 일치하면 의견이 약간 달라도 서로 동료의식과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 확인으로 서로 소통한다고 한다. 남녀간의 소통은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서로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맞장구치며 같이 화내고 웃고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이러한 것을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남녀간의 소통에는 중요해 보인다.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을 하면 ( 一日 一 善 )(130619 JE)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을 하고 하루에 한 번씩 칭찬을 한다면 1년이면 365번, 10년이면 3650번, 50년이면 18250번의 좋은 일과 칭찬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나와 내 가족을 편안하게 하고 내 이웃을 이롭게 하며 또한 선순환의 기초가 되어 음으로 양으로 자신과 가족과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동조하고 이러한 것을 실행한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좋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하고 다정하며 서로 격려하고 돕는 상생(相生)의 선순환(善循環)을 일으킬 수 있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136013 JE)

오늘도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갈증을 채워줄 몇 모금의 물에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에 감사드리며 나와 가까운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며 어제보다 더 아프지 않은  건강에 감사하며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두 손을 쓸 수 있어 감사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감사하며 희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하여주셔 감사합니다. 지난 잘못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드리며 또 다른 내일을 생각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잔소리나마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어 감사드리며 주변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더욱 더 감사한 것은 소중한 시간, 시간을 저에게 주셔 감사드립니다.

 

각자의 역할

머리, 팔과 다리 등 신체의 구성원들이 입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입이 자신들이 생각하여 부지런히 걷고 일해 얻은 음식들을 팔이 갖다주면 혼자 먹고 혼자 즐기는 못된 친구라 생각하였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 입을 위해서 아무 일을 하지 않기로 의논하여 실행에 옮겼답니다. 머리는 새로운 음식을 찾을 생각을 않기로 하고 다리는 음식을 얻기 위해 걷지 않으며 팔도 음식들을 입에 가져다 주는 것을 거부하였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는 어지럽고 팔과 다리도 힘이 없어지고 다른 구성원도 현저히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이 혼자 먹고 즐기는 것이 아니고 그 역할이 아주 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생각을 바꿔 각자 자신의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하기로 하였답니다. 그러자 다시 몸의 각 부분이 다시 예전처럼 활기차고 건강해졌답니다.

 
호접지몽 (胡蝶之夢)
장자가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꽃밭을 팔랑이며 자유롭게 날고 있었고 꽃과 나무사이를 날으다 보니 어는 나무 밑에 어떤 사람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장자 바로 자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감짝 놀라 잠에서 깨어 생각에 잠겨 "아까 꿈속에서 나비일 때는 내가 인간인 것을 몰랐는데 꿈을 깨고 나니 나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 그럼 나는 정말 인간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인간으로 변한건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에서
 

부자 (富者)

奢者富不足, 儉者貧有餘 (사자부부족, 검자빈유여: 사치로운 자는 부유해도 늘 부족함을 느끼고 검소한 자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늘 여유가 있다)

奢者心常貧, 儉者心常富 (사자심상빈, 검자심상부: 사치로운 자는 마음이 항상 가난하고 검소한 자는 마음이 항상 부자이다)             

 - 周나라 愼到(신도)가 엮은 "愼子外篇(신자외편)"에서 -

 

흥하는 비결, 망하는 이유

옛날 두 친구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물려받은 재산도 비슷하고 식구 수도 비슷한데 한 친구는 하는 일마다 잘 풀려 부자로 편안히 지내는데 다른 한 친구는 영 그러지 못했습니다. 못사는 친구는 잘사는 친구가 부러워 비결을 물었으나 별다른 비결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답답하여 자꾸 물으니 "못 믿겠으면 우리집에 한 번 가보세" 그리하여 잘사는 친구집에 가서 같이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취기가 오르자 잘사는 친구가 아들을 불렀습니다. "얘야 나가서 벼를 좀 베어오너라" 때는 음력 7월 이라 아직은 벼를 벨 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잠시후 덜익은 퍼런 벼이삭이 달린 벼를 한 웅큼 베어와서는 "아버지, 베기는 했는데 좀 봐주십시요,  부자친구는 "아직 때가 아니구나 나중에 베거라." 그리고 아들에게 "술안주로 쓸 것이니 대추를 좀 따오너라." 아들은 이번에도 공손히 물러가서 똑 같이 행하였습니다. 다음에 못사는 친구가 부자친구를 데리고 자기 집에 갔습니다. 술을 같이 마시다 아들에게 벼를 베어오라고 하자 아들이 대답하기를 아버지, 노망나셨어요. 지금이 몇 월인데 벼를 베요!. 하더랍니다. 조금 있다가 아들에게 대추를 따오라고 다시 시켰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기가 살아 큰소리로 "아이고 동네사람들 우리 노친이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소!. 하면서 아버지를 책망하더랍니다.

 

남의 사정을 헤아린다

飽而知人之饑(포이지인지기),     배가 부를 때 배고픈 사람 사정 헤아리고
溫而知人之寒,(온이지인지한)     따뜻할 때 추위에 떠는 사람 사정 헤아리며
逸而知人之勞.(일이지인지로)     편안할 때 힘든 사람 사정 헤아린다.

晏子春秋(안자춘추) 內篇에서

 

족함을 아는 사람

知足者, 貧賤亦樂  (지족자,빈천역락)  不知足者, 富貴亦憂  (불지족자, 부귀역우)
  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즐겁게 살지만
  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여도 근심속에 산다.
 (宋나라 임포(林逋)의 省心錄에서)

 

마시멜로 이야기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15분 간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중 3분의 1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마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는 끝까지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로부터 14년 후에 밝혀졌다. 당시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정신력과 함께 사회성이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으나 눈앞에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들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아이들에게 어찌 보면 가혹할 수도 있는 15분이라는 시간을 고통으로 느끼지 말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즐거움으로 기다리라는 것.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유혹들을 고통과 쓰디쓴 인내로 통과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성공은 고통과 시련의 대가가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대가이다.

 

견리망의 (見利忘義) 눈앞에 이익에 치우쳐 참된 처지를 잊는다.

장자가 조릉(雕陵)이라는 정원에 놀러갔는데 큰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어 화살로 잡으려고 하였는데 그새는 그 것도 모르고 미얀마제비를 노리고 있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미얀마제비는 나무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으며 매미는 그 것도 모르고 한가로이 맴맴 울고 있었다. 장자는 큰새도 미얀마제비도 매미도 자신의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빼앗겨 자신의 위험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자는 문득 이치를 깨닫고 득이양양해 있는데 정원지기가 와서 이 정원은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된다며 장자를 책망하였다고 한다.

 

출호이자 반호이자야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曾子曰 戒之戒之 하라.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출호이자 반호이자야)  

증자께서 말씀하시길 조심하고 조심하라. 너에게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는 법이다.

 
나라가 흥할려면
나라가 흥할려면 상서러운 징조가 나타나는데 군자는 기용되고 소인은 쫓겨난다. 나라가 망할려면 어진 이는 숨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난신이 귀하신 몸이 된다. (司馬遷의 史記 "楚元王 세가")
 

추사의 세한도(歲寒圖)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  추운 후에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이 오래 간다는 것을 안다는 뜻  )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 1844년 중국어 역관이던 제자 이상적(1804 ~1865)이 자신에 대한 변함 없는 지극한 마음에 감동하여 그려준 그림인 세한도(국보 180호)가 의미하는  논어 글귀이다. 이듬해  북경에 가서 옛 친구 오찬(吳贊)의 잔치에 이 그림을 보였는데 그 자리 있던 청나라문사 16인이 감상하고 감격하여 각 각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세한도 두루마리 뒷부분에는 이들 문사의 시문이 붙어 있고 또 김준학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 선생의 찬문(讚文)도 붙어 있다고 한다.

 

오조팔성십일군 (五朝八性十一君)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閉口深藏舌     安身處處宇 (폐구심장설  안신처처우)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출호이자 반호이자야)        너에게 나오는 것은 너에게 돌아가는 법이다.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송(宋)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다섯왕조에 걸쳐 8개성을 가진 11명의 임금을 섬긴 풍도(馮道)라는 인물의 자작시 )

 

체로 세 번 걸러라.

누군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럴 수가 있나! 여보게, 소크라테스. 방금 내가 밖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나? 아마 자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그게 말이지..." " 말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가 지금 급하게 전해 주려는 소식을 체로 세 번 걸렀는가?" 그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체로 세 번 걸렀냐고? 무슨 체를 말하는 건가?"

"첫 번째는 진실이네. 지금 말하려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아니, 그냥 거리에서 주워들었네."

"그렇다면 두 번째 체로 걸러야겠군.

자네가 말하려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선의에서 나온 말인가?" 그러자 그 사람은 우물쭈물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소크라테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세 번째 체로 걸러야겠군.

자네가 그렇게 흥분하게 만든 소식이 아주 중요한 내용인가?" "글쎄...."

"자네가 나에게 전해 주려는 소식이 사실도 아니고, 게다가 선의에서 비롯된 마음으로 전해 주려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면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네.

그런 말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네."  

 

타락한 아들 사람만들기

조선왕조 초기의 황희 정승은
아들이 자신의 훈계를 듣지 않고
주색에 빠져 계속 향락적인 생활을 하자

하루는 의관속대를 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아들을 정중히 맞아들였습니다.

아들은 깜짝 놀라
"아버님, 어찌 의관속대를 하시고
저를 맞이하여 주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

황정승은 애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니
내 집 사람일 수 있겠소?
한 집 사람이 아닌 나그네가 집을 찾으니
주인이 예를 갖추어 맞아야 도리가 아니리요." 이후 아들은 생활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삼년불비 불우명(三年不飛又不鳴)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B.C. 613∼591)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않아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공포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는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술과 여자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냈다고한다.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어볼까 하나이다." "어서 말해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어지러운 행동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오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 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으며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았다.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문경지교(刎頸之交)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목현(繆賢)의 식객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원상태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으며 3년 후(B.C. 280),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진나라의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인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從一品)의 상경(上卿)에 올랐다.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쳐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 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 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이 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로 소양왕이지요." "나는 그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의 소양왕이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위기를 생각하고 염파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염파는 사죄하기위해 윗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肉粗負荊:사죄의 뜻을 나타내는 행위)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끓고 말하길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 하며 진심으로 사죄했다. 이후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 를 맺었다고 한다.

 

양두구육 (羊頭狗肉)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이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남자처럼 꾸미는 것)을 시키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궁밖에서도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지령을 내리게 했으나 남장여인의 유행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안영이 대답하길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 양두구육)"과 같사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공의 안영의 말에 따라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고 이 후로는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이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양금택목 (良禽擇木)

공자가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세 상의하자 공자가 말하길 "저는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고 했습니다. 제자가 까닭을 물으니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치며 (良禽擇木: 양금택목)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한다."고 말하였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더 머물도록 하시오." 라며 공자의 귀국을 만류했다고 합니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춘추전국 시대인 BC 4세기 중엽 위(魏)의 혜왕(惠王)이 진(秦)나라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다. 그러나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도 패하는 바람에 국력은 더욱 떨어졌다. 그래서 혜왕은 국력 회복을 위해 왕도 정치론을 유세중인 맹자를 초청해 자문을 구했다. "선생이 이렇게 와 준 것은 과인에게 부국 강병(富國强兵)의 비책(秘策)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겠소?"  "전하, 저는 귀국의 부국 강병보다 인의(仁義)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백성을 생각하라는 선생의 인의의 정치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하고 있소. 예컨대 흉년이나 기근이 들면 곡식을 풀어 구호하도록 힘쓰고 있지만 백성들은 과인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것 같지 않고 이웃 나라의 백성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못 들었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그러자 맹자가 말하길

"전하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하겠습니다.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사옵니다. 그런데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위왕이 말하길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소?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들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백성을 진정 위하는 인의(仁義)의 정치보다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는 이웃 나라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은 부끄러워 대답을 못 했다고 한다.

 
여도지죄(餘桃之罪)

춘추전국 시대에 위(衛)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왕의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효심을 칭찬했다고 한다. "실로 효자로다. 제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어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먹던 것도 잊고 과인에게 주다니...."  세월이 흘러 미자하에 대한 왕의 총애도 시들해졌는데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놈은 언젠가 허락없이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자기가 먹던 복숭아[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고 하였다.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미움이 되어 화를 불러 올 수 있다.

 

마부작침(磨斧作針)

시선(詩仙)으로 불리우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자는 태백<太白>, 701∼762)의 어렸을 때 아버지의 부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어릴 적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공부를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께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태백이 한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일설에는 쇠공이(鐵杵)를 갈고 있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할머니에게 질문을 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단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태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생각을 바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후 이태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칠보지재(七步之才: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

삼국 시대의 위왕(魏王)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인 식(曹植)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조식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조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맏아들 조비를 제쳐놓고 조식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맏아들이었던 조비는 어릴 때부터 조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조식에 대한 미움이 깊었다고 한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魏王)을 세습한 조비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189∼226)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220∼226)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하였는데 어느 날 동생인 동아왕(東阿王)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이렇게 하명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짓지 못할 땐 중벌을 번치 못할 것이니라." 그러자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煮豆燃豆?(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심히 핍박(逼迫)하는가"라는 뜻의 칠보시(七步詩)를 지었는데이를 들은  문제(文帝)인 조비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世說新語〈文學篇〉

 

逐鹿者 不見山(축록자 불견산)

逐鹿者 不見山(축록자 불견산)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攫金者 不見人(확금자 불견인) 돈을 붙잡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

 전한(前漢)시대, 유안(劉安)의 저서 회남자(淮南子)중에서

 

巧言令色 (교언영색)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 선의인)  말재주가 교묘하고 표정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은 적다.

剛毅木訥 近仁(강의목눌 근인)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仁)을 갖춘 군자에 가깝다.

文質彬彬 然後君子(문질빈빈 연후군자) 문(文:말과 글)과 질(質:실제 행동)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이다.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 자로편(子路篇),옹야편(擁也篇) 중에서

 

학철부어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

전국 시대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던 장자(莊子)는 왕후(王侯)에게 무릎을 굽혀 안정된 생활을 하기보다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으나 가난한 그는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장자는 굶다 못해 감하후(監河侯)를 찾아가 약간의 식대를 꾸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하후는 친구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핑계를 댔다. "빌려주지. 2,3일만 있으면 식읍(食邑)에서 세금이 올라오는데 그때 삼백 금(三百金)쯤 융통해 줄 테니 기다리게."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며칠 뒤의 거금인(巨金) 삼백 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체면 불고하고 찾아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장자는 내뱉듯이 말했다. "고맙군. 하지만 그 땐 아무 소용없네." 그리고 이어 장자 특유의 비아냥조(調)로 이렇게 부연했다고 한다. "내가 여기 오느라고 걷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더군'왜 불렀느냐'고 묻자 붕어는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몇 잔만 떠다가 살려 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귀찮은 나머지 이렇게 말해 주었지. '그래. 나는 2,3일 안으로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유세를 떠나는데 가는 길에 서강(西江)의 맑은 물을 잔뜩 길어다 줄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붕어는 화가 나서 '나는 지금 물 몇 잔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니 이젠 틀렸소. 나중에 건어물전(乾魚物廛)으로 내 시체나 찾으러 와 달라'고 하더니 그만 눈을 감고 말더군. 하고 떠났다고 한다.

 
간담상조(肝膽相照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와 유종원이 있었다. 이들은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는데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비교하여 세상의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썼다고 한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學不可以已 (학불가이이:  학문은 그쳐서는 안된다)

靑取之於藍 (청취지어람: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으나)

而靑於藍 (이청어람:  쪽빛보다 더 푸르고)

氷水爲之 (빙수위지:  얼음은 물에서 만들어졌지만)

而寒於水 (이한어수:  물보다 더 차다)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

 

어머니와 과자

어머니가 아이에게 주려고 과자를 병에 넣어두었습니다. 아이가 병에 손을 넣고 한주먹 쥐고 빼려고 하나 되지 않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가 와서 웃으면 하는 말이 "얘야, 한꺼번에 많이 가지려하니 손이 빠지지 않는 거란다. 조금씩 손에 넣어 빼면 손쉽지 않겠니.

 

군맹무상(群盲撫象)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어느날 맹인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코끼리를 끌어오게 한 다음 소경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그리고 경면왕은 소경들에게 물었다. "이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느냐?" 그러자 소경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알았나이다." "그럼, 어디 한 사람씩 말해 보아라." 소경들의 대답은 각기 자기가 만져 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랐다. "무 (상아)와 같사옵니다." "키(귀)와 같나이다." "돌(머리)과 같사옵니다." "절굿공(코) 같사옵니다." "널빤지 (다리)와 같사옵니다." "독 (배)과 같사옵니다." "새끼줄(꼬리)과 같사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涅槃經: 열반경)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다.

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자왈 여선인거 여입지란지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구이불문기향   즉여지화의요) (  : 공자가 말하기를,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도록 그 냄새를 알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가 동화되고)

與不善人居   如入飽魚之肆 (여불선인거    여입포어지사)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구이불문기취   역이지화의) (착하지 못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나쁜 냄새를 알지 못하나 또한 더불어 동화된다)고 하였다.

 명심보감 (銘心珤鑑) 교우편(交友篇)

 

계륵(鷄肋)

후한(後漢) 말에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원정을 떠났다. 익주[益州:사천성(四川省)]을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왕인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서였다. 유비의 군사는 제갈량(諸葛亮)의 계책에 따라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처음부터 계속 조조군의 보급로 차단에만 주력했다. 배가 고파 도망치는 군사가 속출하자 조조는 어느 날 전군(全軍)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계륵(鷄肋)!"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양수(楊修)만은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장수가 그에게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게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역시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철군(撤軍)을 결심하신 것이라오." 그의 말대로 조조는 며칠 후 한중으로부터 대군을 철수시켰다고 한다. (後漢書:후한서)

 

먼 곳의 물로는 불을 꺼지 못한다.

노나라의 목공이 그의 공자들을 멀리 진나라와 초나라에 보내  친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두나라와 친교를 맺어 유사시 협조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신하가  말하길 "월나라에서 사람을 데려다가 지금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 해도 비록 그 사람이 수영의 명수라해도 제 때에 올 수 없으니 아이를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불이 났을 경우에 먼 바다의 물을 길어 끄려고 해도 그것은 허사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먼곳의 물로는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습니다." 라며 반대하였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 제 22편 說林에서

 

나라와 집안을 다스림

도리 아닌 재물을 멀리하고 도에 지나친 술을 경계하며, 거처함에는 이웃을 가리고 사쉴 때는 벗을 가리며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남을 헐뜯는 말을 하지 말라.  동기간에는 가난한 형제를 멀리하지 말며 타인 가운데는 부유한 자를 후하게 대하지 말며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는 일은 근검을 첫째로 삼고 대중을 사랑함에는 겸손과 화목을 첫째로 삼을 것이며 언제나 지난 나의 잘못을 생각하고 미래의 허물을 생각하라. 만약 나의 이 말을 잘 따른다면 나라와 집안을 다스림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종황제어제(神宗皇帝御製)

 

음식이 담백하고 마음이 맑으면(食淡心淸)

음식이 담백하면 정신이 상쾌하고 마음이 맑으면 꿈자리가 편안하다.(食淡精神爽  心淸夢寐安 : 식담정신상 심청몽매안)

경행록(景行錄)

 

효자는 효자를 낳고(孝順還生孝順子: 효순환생효순자)

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효도하고 순한 자식을 낳으며 부모에 거역한 사람은  거역하는 자식을 낳는다. 믿지 못하겠다면 저 처마끝의 낙수(落水)물을 보라 . 방울 방울 떨어짐에 어긋남이 없다.

 태공(太公)

 

고복격양(敲腹擊壤)

요(堯)임금께서  천하가 정말 잘 다스려져 백성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행(微行;미복잠행(微服潛行))을 하였답니다. 어떤 거리에서 아이들이 모여 요임금의 공덕(功德)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백성 위에 계시는 덕(德)의 최고봉이시여, 백성들은 임금님의 교화(敎化)를 잘 따르네."
하지만 요임금은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어느 시골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나무 그늘에 앉아 배불리 먹었는지 배를 두드리고(고복:鼓腹)   땅바닥을 치면서(격양:擊壤)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답니다.
"해 뜨면 나가 일하고,(日出而作: 일출이작)   해지면 들어와 휴식을 취하네.(日入而息: 일입이식)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鑿井而飮: 착정이음)   농사 지어 음식을 먹네.(農耕而食: 농경이식)
임금의 힘이 어찌 나에게 미치리오!  (帝力何有於我乎:제력하유어아호)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비로소 기쁨의 미소를 띠면서   "이제는 되었구나 "라고 했였답니다.
 

어머니의 자식교육

조선시대 숙종 때의 학자 김학성의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과부가 되어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그녀는 삯바느질을 하여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두 아들은 좋은 선생에게 보내어 공부하게 했습니다. 하루는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처마에서 물이 밑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물방울이 닿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치 땅 밑에서 쇠그릇이 울리는 소리와 같아 호기심에 땅을 파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땅 속에는 은이 가득 찬 큰가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큰 재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지 않고 남모르게 흙으로 다시 묻어 버렸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오빠에게 부탁하여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후 두 아들은 장성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학문을 인정받기에 이르렀고 그제야 고향으로 돌아온 어머니와 두 아들은 아버지의 제사를 모셨습니다. 제삿날에 어머니는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 나는 이 두 아이를 잘 기르지 못할까 봐 늘 마음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의 학업도 진취하고 아버지의 뜻을 계승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나는 이 세상을 떠나도 부끄럽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의 앞마당에서 발견한 은가마를 버린 사연을 덧붙여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오빠가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다시 말했습니다. "이유 없이 큰돈을 얻으면 반드시 의외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고생해야 되는 것인데 어려서부터 편안하게 되면 공부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낭비하는 습관만 생기고 마음이 점점 게을러져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이를 떠나는 것이 화(禍)를 떠나는 일인 줄 알아 기꺼이 가난의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슴과 나무

사냥꾼에 쫒기던 사슴이 무성한 나뭇잎이 있던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사냥꾼이 지나간 후 사슴은 자신을 숨겨주었던 나무의 나뭇잎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냥꾼 중 한 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 사슴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사슴은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 나를 구해 준 나무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그를 다치게 하였으니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

 

시작이 중요하다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합포지목 새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라 하더라도  털끝같이 작은 싹에서 나는 것이며, 구층이나 되는 높은 누대(樓臺)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줌의 흙더미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며 천리나 되는 먼 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출처: 老者(노자)

 
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악 고기어도)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만물의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대중이 싫어하는 곳에도 처(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도(道)에 가깝다"

출처: 노자(老子)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謂學不暇者(위학불가자) 雖暇 亦不能學矣(수가 역불능학의)

배움에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비록 시간이 있을지라도 또한 능히 배우지 않을 것이다. 

출처: 淮南子(회남자)의 說山訓篇(설산훈편)

 

우공이산(愚公移山)

중국의 삭동과 옹남지역에 있는 태행산과 왕옥산은 본래 기주의 남쪽과 하양의 북쪽에 있는 산이었습니다. 이 산 밑에 우공이라는90대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남은 여생을 마을을 위해 보내기로 하였답니다. 그는 태행산과 왕옥산이 마을을 가로막아 외지와 소통이 어려운 것을 해결하리라 생각하고 가족과 함께 이산의 흙을 발해에 버리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우직하고 미련하다고 비웃었지만 우공은 내가 못이루면 내 아들이 내 아들이 이루지 못하면 내 손자가 이을 것이니 언젠가는 산을 모두 없애 길을 열 것이라고 하면서 계속하였답니다. 그러자 두산의 산신령이 이 사실을 하늘의 천제(天帝)에 고하자 그 뜻을 가상히 여겨 두 산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우공의 뜻을 이루어지게 해 주었답니다. (출처: 列子  湯問篇)

 

 관중(管中)과 포숙(鮑叔)

중국 춘주전국시대 제나라에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인 관중과 포숙이  살고 있었습니다. 후에 관중이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관중이 명재상이 되기까지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후에 관중이 포숙을 칭송하여 말하길 " 내가 어려 곤궁할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내가 더 많이 가져 갔으나 포숙이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 주었기 때문이었고 벼슬길에 들어서도 내가 많은 실수를 하였으나 포숙은 내가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전쟁터에서 같이 가서 내가 세 번이나 도망치자 사람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하였지만 포숙은 내게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나와 포숙이 각 각 제나라의 두 공자인 규와 소백의 사부가 되었으나 내란에 공자 규가 소백에 참패하여 내가 참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몰리자 포숙이 적극 설득하여 나를 구해주었으며 오히려 재상의 자리까지 물려주어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게 나를 알아 주었다. 결국 나를 낳아 주신 분은 나의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사람은 포숙이다.

 

 불혹(不惑)

공자가 말하길 "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志學, 지학) 30세에 뜻을 확고히 했으며(而立,이립) 40세에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으며(不惑, 불혹) 50세에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知天命, 지천명) 60세에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았으며(耳順, 이순) 70세에 하고 싶은 바를 하여도 법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에서 나온 말로 나이 40세를 뜻 합니다. 이외에 나이를 뜻하는 한자로는 여자 나이 16세를 과년(瓜年), 20세 전후 남자를 관을 쓰는 성년에 비유하여  약관(弱冠), 20세 전후의 여자를 꽃다운 나이를 뜻하는 방년(芳年) , 61세에는 환갑(還甲), 회갑(回甲), 70세는 종심(從心), 고희(古稀), 80세는 산수(傘壽),  90세는 졸수(卒壽), 동리(凍梨), 99세는 백수(白壽)라 합니다.

 

 어부지리(漁父之利), 방휼지쟁(蚌鷸之爭)

춘추전국시대에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인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이를 수락한 소대는 세 치의 혀 하나로 합종책(合縱策)을 펴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혜문왕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합니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과 조의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그 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시지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혜문왕도 명신으로 이름난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를 중용했던 현명한 왕인 만큼  소대의 말을 알아듣고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고 합니다.

 

 백유지효 (伯兪之孝)

중국의  전한때의 한유의 이야기입니다. 백유(한유)가 잘못이 있어서 어머니가 매를 때리자 백유가 슬피 울기에 어머니가 말하길 다른 때는 잘못을 하여 매를 때려도 울지 않더니 왜 우는가를 묻자 백유가 대답하길 "제가 잘못을 하여 어머니께서 때린 매가 항상 아팠는데 오늘은 어머니의 힘이 모자라 아프지 않으니 그 까닭에 웁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좌우명(座右銘)

제(齊)나라에 환공이 죽자 廟堂(묘당)을 세우고 각종 祭器(제기)를 진열해 놓았는데 그 중 이상한 술독이 하나 있었답니다. 비어있을 때는 기울어져 있다가도 술을 반쯤 담으면 바로 섰다가 가득 채우면 다시 엎어지는 술독이었답니다. . 하루는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함께 그 묘당을 찾았는데 박식했던 孔子도 그 술독은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 담당 관리에게 듣고 나서 감탄을 하면서" 저것이 그 옛날 齊桓公(제환공)이 의자 오른쪽에 두고 가득 차는 것을 경계했던 바로 그 술독이로구나!" 그는 제자들에게 물을 길어와 그 술독을 채워보도록 했는데 과연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술독이 물이 차오름에 따라 바로 서더니만 나중에는 다시 쓰러지는 것을 보고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공부도 이와 같은 것이다. 다 배웠다고(가득 찼다고) 교만을 부리는 자는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되는 법이니라"  집에 돌아온 그는 똑같은 술독을 만들어 의자 오른쪽에 두고는 스스로를 가다듬었다고 합니다.

 

 권학문(勸學文) 주자훈(朱子訓)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이 가고 해는 나와 같이 늙어지지 않으니, 슬프다 늙어서 후회한들 그 누구의 허물인가?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초의 시간인들 가벼이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풀의 꿈을 미처 깨기도 전에 뜰 앞의 오동잎이 가을소리를 전하는구나.

 

  당나귀와 애완견

옛날에 당나귀와 애완견이 한집에 살았답니다. 당나귀는 마구간에서 지냈는데 건초와 마른 옥수수등 먹을 것이 풍부하였습니다.  애완견은 주인의 무릎에도 오르기도 하고 이 곳 저곳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애교를 부리며 재미있게 놀아 주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나귀는 자신은  힘든 일을 하는 데 애완견은 놀면서 사랑받는 것이  불만이어서 꾀를 내었습니다. 애완견처럼 행동하면 주인의 귀여움을 받겠다고 생각하여 집안으로 들어가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주인의 식사중에 탁자를 쳐 접시를 깨기도 하고 주인에 뛰어 올라 핥기도 하자 주인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답니다.

 

빈천지교(貧賤之交), 조강지처(糟糠之妻)

후한의 광무제가 과부인 누님을 시집보내려는 마음에서 유부남인 重臣(중신) 宋弘(송홍)에게 이르길 "貴易交 富易妻 ( 귀역교 부역처:사람이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라 하며 떠 보자 송홍이 대답하길

"貧賤之交 不可忘,(빈천지교 불가망: 어려운 시절의 친구를 잊을수 없고)

糟糠之妻 不下堂.(조강지처 불하당: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를 버릴수 없다.)"고 했다.

 

  늑대와 양

늑대들이 양들에게 평화협정을 맺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분쟁의 원인을 자신들이 오면 짖어대는 개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양들에게 개들을 멀리 보내면 자신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답니다. 늑대의 말을 믿은  양들은 개들을 내어보냈답니다. 그러자 늑대들은 손쉽게 양들을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소년과 개구리

 소년 몇 명이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연못에 개구리가 많은 것을 보고 돌을 던지며 재미있어 하였습니다. 그러자 용기있는 개구리 한 마리가 말했습니다. 애들아 그런 위험한 놀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너희들은 장난이지만  우리들는 죽을 수도 있어.

 

 장자와 백정

 한번은 장자가 문혜군이라는 왕을 초청해 놓고, 소 잡는 기술자를 강사로 내세워 도를 강의하게 하였습니다. 강사는 먼저 실기로 왕에게 시범을 보였습니다. 그의 손놀림과 자세, 칼을 쓰는 동작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혜군이 경탄하며 말했습니다.
"아아, 훌륭하도다!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가?"
소 잡는 기술자가 칼을 놓고 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이 아니지요. 제가 처음 소 잡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보이는 것이 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소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으로 소와 만날 뿐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췄고, 마음만이 움직입니다. 오직 소의 결대로 칼을 움직여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을 쪼개 벌리고, 뼈와 뼈 사이의 빈 곳에 칼을 밀어넣고, 소의 몸 중 원래부터 빈 곳을 따라가니 뼈나 살이 엉겨붙은 곳에 칼이 닿는 일이 없고, 하물며 큰 뼈에 닿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솜씨 좋은 사람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이 엉긴 곳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다달이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칼은 지금 19년이 되었습니다. 잡은 소는 수 천 마리가 됩니다. 그런데도 칼날은 금방 숫돌에 갈아 낸 것 같습니다. 원래 소의 뼈마디 사이에는 빈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 넣으니, 거기에는 자연히 넉넉하고 넓어 아무리 칼날을 휘저어도 반드시 남는 구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19년이나 쓴 칼날이 아직도 금방 숫돌에 갈아낸 것 같지요.하지만 살과 뼈가 얼키고 설킨 곳에서는 저 역시 어려워집니다. 두렵고 조심스럽기만 하고, 눈이 한곳에 고정되어 손놀림이 더뎌집니다. 따라서 칼의 움직임도 매우 미묘해집니다. 그래서 찢고 벌려 다 가르고 발라내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쌓이듯 고깃덩이가 쌓이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저는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돌아보며 흐뭇해 합니다. 그리고는 칼을 닦아 넣어 두지요."
"정말 훌륭하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 비로소 양생의 비결을 알았다."

 

 사소한 것에도 주의하라

千丈之堤, 以漏蟻之穴潰 (천장지족,이누의지혈궤)        천길의 강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고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백척지실, 이돌극지연분)       고대광실도 굴뚝연기로 불탄다.

韓非子(한비자) 喩老(유로)에 있는 말

 

 비익조(飛翼鳥)와 연리지(連理枝)

비익조(飛翼鳥)는 한 쪽 눈과 한 쪽 날개만을 갖고 있는 전설 속의 새로 두 마리가 붙어야 하나의 몸체가 되는 새이며, 연리지(連理枝)는 금슬이 좋았던 부부의 무덤 앞에 두 그루의 나무를 심었더니 두 나뭇가지가 달라붙어 하나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비익조와 연리지는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상징하는 말이다.